본 사업은 2023년도 청년들에게 여순사건의 배경과 지역에서 갖는 의미를 알리며, 청년 서포터즈를 양성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여순사건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사업입니다.
여순사건청년서포터즈의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출처_https://dfwon603.tistory.com/3
여순항쟁은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할아버지 할머니께 여쭤봐, 그렇게 슬픈 역사 없었다고 말할 거야.” 여순항쟁이란 역사가 지금까지 살아온 긴 시간 속에서도 잊히지 않은 한으로 가슴 깊이 남아있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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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께 여쭤봐, 그렇게 슬픈 역사 없었다고 말할 거야.”
여순항쟁이란 역사가 지금까지 살아온 긴 시간 속에서도 잊히지 않은 한으로
가슴 깊이 남아있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매일 걸어 다니던 골목길도, 꽃구경을 가던 옆 동네 언덕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갖지만, 그 뒤의 역사엔, 아픔과 슬픔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낯설지 않은 몇몇 장소들을 다녀왔습니다.
필자가 다니고 있는 순천대학교
당시 진압군의 주둔지였던 순천대학교
민간인 학살지엔 현재 팻말이 세워져 있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당시 사진이 있더라도,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다행히 사진에 남아있던 주변 산맥을 보고, 순천대학교 부근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출처 : 미국의 라이프(Fife)지 기자였던 칼 마이던스(1907~2004)
그들 뒤에서 두 사람이 곤봉을 들고 서 있었다. 실실 웃으면서 때리던 그 두 사람이 숨을 몰아쉬기 위해 잠시 쉴 때까지 그들은 무릎을 꿇고 있던 사람들의 머리와 등을 계속 때렸다.
(중략)
그는 자신의 카빈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무릎 꿇고 있던 한 남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계속 후려치다가, 마침내 그는 마치 염소처럼 헬멧을 앞으로 숙인 채 돌진하더니 빌고 있던 한 사람의 머리에 자신의 강철 헬멧으로 박치기해 버렸다.
[ 한국에서의 반란, LIFE 20, 1948년 11월 15일 ]
이처럼 그들이 말하던 반란군을 제압하기 위해, 이유 불문하고, 제대로 된 수사 없었기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증언이 그 당시에 있었다고 합니다.
현 순천대학교 대학 본부 뒤편 팻말

현재 남문터 광장 부근 신한은행이 있는 도로가 있습니다
현재는 푸드 아트 페스티벌 등 시민들에게는 친숙하게 남아있는 거리입니다.


예전은 이곳에 현재 은행기준으로 건너편에는
군청, 법원, 검찰지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은행 건물은 당시 특별조사국으로 운영되어,
지하실에서 고문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그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황무연 의원도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이 현 중앙동의 신한은행 건물입니다.
사진출처 : 미국의 라이프(Fife)지 기자였던 칼 마이던스(1907~2004)
이처럼 여순항쟁의 한이 맺힌 장소는 동천, 서면, 생목동, 매곡동, 북초등학교 등 순천시내 전역에 남아있다. 또한 순천 외곽지역 여러 장소에서도 여순의 역사가 남아있습니다.
순천에서 활동하며 일상에서도 역사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지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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