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터즈 활동

[제1기 서포터즈_김서현 서포터]여순 사건 다이어리 : 3. 평화공원과 함께 훑어보기

랭방 2023. 11. 20. 14:50

본 사업은 2023년도 청년들에게 여순사건의 배경과 지역에서 갖는 의미를 알리며, 청년 서포터즈를 양성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여순사건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사업입니다.

여순사건청년서포터즈의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출처_https://available-name-632.tistory.com/4

 

여순 사건 다이어리: 3. 평화 공원과 함께 훑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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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 10·19 평화공원

 

 

 

지난 두 차례 글을 올리고 나니, 나 또한 기본 정보를 알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 글은 내가 아는 것 몇가지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와 엮어 올려보고자 한다.

 

이번 글은 단순 사실 나열의 형태로 전달하려는 목적이다. 여태까지의 글이 재미를 좇아 작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읽는 사람들이 끝까지 관심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함께 첨부하는 사진은 23년 10월 21일, 여순사건청년서포터즈에서 여순사건 탐방일에 촬영한 것이다.

 

 

 

 

공원을 거닐게 된다면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전해 듣기로 공원 내에 작성된 모든 정보 팻말이 온전히 맞지 않다고 한다. 

 

순천시는 2021년 10월 즈음 장대공원 일부를 여순 10·19 평화공원으로 선포했다. 그런데 여순연구와 진상규명 및 조사절차는 이루어진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중에 정보가 조금씩 바뀌기도 했다는 것이다. 만약 구체적이고 최신에 가까운 정보를 얻으려면 공원을 참고하기 보다 다른 방법을 구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도 공원을 거닐면서 둘러보기는 좋을 것이다.

 

 

상징 조형물인 뒤틀린 총구

 

 

앞으로 계속 이야기 할 10·19 여순사건(48.10.19~55.04.02)은, 명칭에 피해 중심 지역인 여수와 순천을 담고 있다. 실제로는 제주 4 ·3사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전남부터 전북, 경남, 경북 지역까지 영향을 미친 큰 사건이다. 

 

좌우익인사는 물론 무고한 민간인들 대다수가 '반군 협력자 색출'을 빌미로 군경에 의해 희생됐다. 결코 일부만의 짧은 기간을 담은 기억이 아닌 것이다.

 

[한겨레]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들 71년 만의 재심

[연합뉴스] [여순사건특별법 제정] ① 진실 규명·희생자 명예 회복 '첫발'

 

 

 

 

순천시는 2일 여순사건 발생 73년이 되도록 대다수가 알지 못하거나 무관심하고, 피해와 결과에 대한 사실적 이해보다는 왜곡된 내용으로 반목의 역사가 되고 있다고 보고 이를 바로 알리는 교육현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표지판을 세우게 됐다고 밝혔다. 

    [뉴스1] 순천시 "우리가 몰랐던 여순사건 역사현장 기록으로 새긴다"

 

 

여순사건 키워드

 

평화의 벽

 

간단하게 앞으로 자주 나올 키워드를 몇 가지 뽑아보았다.

 

1. 여순사건 주요 언급 키워드

 - 초대 대통령 이승만

 - 제주 4·3 사건

 - 동백꽃

 - 국민 보도연맹

 - 14연대

 - 손가락 총

 - 남해의 대마도행 물살과 섬

 - 만성리 등 피해지역

 - 6·25 전쟁 발발 

 - 지속적인 사회적 피해

 

개인이 어설프게 선정한 키워드이니, 여순사건 자체에 적용하기보다는 이 포스팅 시리즈의 사전 안내 정도로 보아주면 좋겠다.

 

이 외에도 알아두면 좋을 키워드가 많다. 어디까지 설명해야할지 가늠이 되지 않아 일단 이 정도만 작성했다.

 

나는 특히 손가락 총이 여순사건에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뉴스기사와 관련 저서에도 필수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돈삼 사진을 누르면 오마이뉴스 사이트로 이동한다.

 

 

위의 사진은 여수 오동도의 여순사건 기념관에 있는 '손가락 총' 조형물이다. 손가락 총은 사건의 중심지인 여수와 순천에서 가장 많은 민간인 학살을 이끌어낸 무기였다. 손가락 총의 원리는 아래와 같다.

 

 

 

 

군경이 확성기를 통해 본부를 설치한 학교 운동장으로 시민들을 불러냈다. 반란군으로 간주될까 두려웠던 시민들은 영문도 모르고 향했다. 시키는 대로 운동장 모래 바닥에 줄지어 꿇고 앉아 머리에 손을 올리니, 난데없이 '심사'라는 게 벌어졌다. 심사 담당자들이 손가락질 한 이들은 끌려가 학교 뒤 구덩이에서 즉결처분 당했다.

 

[오마이뉴스] 세아들과 며느리 잃은 어머니의 삶은 어땠을까

 

 

 

 

 

여순 사건 타임라인

 

핵심 요소를 짚었으니, 이제 사건이 시간을 따라 어떻게 이어졌는지 살펴볼 때다. 아래는 사건 경과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작성해 본 것이다.

 

 

여순항쟁 일자. 현재 연구 진행 중인 정보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들은 것 같다.

 

 

2. 여순 사건 경과

 

 

1. 국군 제14연대가 제주 4·3 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켰다. 과거 여순사건을 여순반란이라 불렀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 정부는 진압방침을 세워 순천 및 여수를 공격했다. 계엄법이 만들어 지기전 국무회의에서 여순지역계엄령이 통과되었고, 임시계엄이 선포되었다.

 

3. 여순 지역을 점령한 진압군과 경찰이 우익 청년 단원 및 지방 우익세력의 도움으로 협력자를 색출했다. 혐의자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못하고 지목되는 손가락, 일명 '손가락 총'에 의해 즉결참수나 사형, 또는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4. 반란 중심 세력인 14연대 정규 병력이 산악지대로 탈출했다. 정규 병력이 산으로 숨어들자, 진압군은 전 시민을 반란군으로 간주하고 무차별 공격을 행했다.

 

    (산으로 들어간 14연대 병력은 이승만 정부의 이미지 구체화에 이용되었다. 후에 '빨치산', '빨갱이'라 불리게 된 이들이다. 국민보도연맹을 만든 이유도 이들을 관리 통제하고 전향시킨다는 목적에 있다)

 

5. 여순 지역의 전 시민을 학교 운동장에 모아놓고 '손가락 총'으로 색출 작업을 진행했다. 제대로 된 기준 없이 임의로 지목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심사 기준은 온갖가지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주장이 혼재했다.

     

   (이는 여순 및 광양, 구례, 보성, 고흥 등 인접지역 대부분의 민간인 희생자 발생 구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고 한다.)

 

6. 부역자 색출 과정은 12월 중순까지 약 한 달 반 가량 지속되었다. 계엄령하에 열린 군법 재판으로 많은 수의 민간인이 회부 되었다.

 

   (이때 많은 주민들이 대전 형무소 등 전국 형무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보통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무기징역, 더 나아가 사형까지 구형되었다고 알려졌다.)

 

 

-> 결과적으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남겼다. 19일 ~ 27일까지 이어졌던 여순사건은 다양한 통계로 피해가 확인되며 대량 2천~5천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된 걸로 추정되고 있다. 재산피해는 100억원, 가옥 소실은 2천 호 가량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 이승만 정부의 반공 체제를 강화하는 중요 계기가 되었으며, 이를 빌미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였다. 1949년 11월 전라남도에서 집계한 인명 피해는 1만 1,131명이라고 한다.

 

   (6.25 전쟁이 벌어지자, 정부에서는 여순사건 관련자가 수감된 형무소에서 집단 살해를 저지르기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대전 산내 학살 사건'이 있다.)

 

[디지털여수문화대전] 여순사건

[KBS][여순 너머의 여순]③ 4.3·형무소·보도연맹…여순사건이 부른 죽음들